어느 장애인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관전기
- in Tokyo -
전 성 원
Day 1.
여행의 시작
전에 친구들과 배타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활동보조인(이하 “활보”라 함)도 없이 전동 휠체어 두 대와 친구 한명 세 명이 모여 ‘무(모)한 도전’을 찍었던(?) 적이 있다. 목포항에서 8시간 배타고 왔는데 제주도엔 장맛비가 쏟아졌고, 그 속을 뚫고 휠체어가 갈 수 있는 숙소를 찾아야 했다.
비가 그치길 기도했건만 3일 내내 비만 내려 근처의 용두암만 겨우 보고 와야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번엔 좀 더 준비를 하고 계획을 짜서 활보와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여객선에서 “우리끼리 제주도까지 다녀왔는데 해외라고 못가겠어? 우리도 한 번 가보자!”라고 던진 한마디가 이번 도쿄 여행의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장애를 가진 청년들이다.
17년 친구 겸 활보 일을 하고 있는 민호,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전동휠체어를 타는 후배 민재, 자전거로 제주도 여행 경험이 있던 보행이 가능한 성표와, 친형 같은 활보 영진이형, 그리고 이번 여행의 주최자인 전통휠체어를 탄 나까지 다른 다섯 남자의 무모한 해외여행 미션이 시작되었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어서, 몸이 불편해서, 언어가 안 돼서, 취업 스펙 쌓느라, 일을 해야 하는데 등등 못 갈 이유가 셀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청춘이기에 우린 떠났다.
2달간의 준비 끝에 지난 9월 12일 오전 8시 30분 김포에서 도쿄로 우린 출국했다.
가격 때문에(최소 10~15만원 차이), 일본 항공기를 이용했다. 각자 빠듯한 경비를 모아서 가는 것이었기에 처음부터 항공기 값부터 아꼈다.
김포공항에서 출국수속을 하면서, 전동휠체어는 짐칸으로 옮겨야 하기에 공항용 수동휠체어로 갈아타서 좌석까지 가야 했다. 내가 키가 커서인지 타면 손이 바닥에 끌릴 정도여서 전동휠체어로 게이트 안까지 이동하고 좌석까지는 형 등에 코알라처럼 업혀서 갔다.
비행기는 결국 이륙했다.
난생 처음 탄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으며, 처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니 장관이었다.
이 느낌도 잠시 “내릴 땐 어떡하지? 한국어가 안 통할 텐데~~” 걱정이 앞섰다. 승객들은 앞서 휘적휘적 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디로 가서 짐을 찾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섯 명 모두가 해외 여행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엉거주춤하자, 일본 승무원이 말을 걸어왔다(우리 모두 일어실력은 전무했으며, 그나마 귀가 열려있는 나와 민호가 겨우 알아들을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그 실력에 일본여행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대충 승무원이 말한 요점은 ‘휠체어가 생각보다 늦게 나오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그런데 전동휠체어까지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라는 말이었다.
그 순간, 다들 일제히 너만 믿는다는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봐, 형에게 그 뜻을 전하자 휠체어 있는 곳까지 업고 가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모두 얼어붙어 몸짓으로 이야기했으니까). 허둥지둥(?) 전동휠체어를 타려는 순간, 출입구에 살짝 이마를 찧었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나는 이런 경우가 너무 흔한데), 승무원들이나 공항직원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 직원은 우리가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계속 상처에 신경을 써주고,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 주었다.
결국 도쿄 하네다공항에 입성했다(‘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여행 내내 들었다).
일본의 수도, 그 첫 번째 관문인 하네다공항은 여행의 설렘과 타지에 대한 걱정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숙소로 향하기 위해 여행자 전용 지하철 패스권을 샀다(일본을 여행하기 위해선 지하철 표에 대해 알아두어야 한다. 여러 종류가 있어 자신에게 맞는 것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일본에서는 장애인 할인이 내국인만 가능하다고 한다).
공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중간에 지하철을 갈아타고 숙소까지 가는데, 4시간이나 걸렸다.
입국수속 2시간, 패스권 구입 20분, 모노레일과 지하철 승차 1시간 30분, 숙소 근처(우에노)역에서 숙소까지 10분 등 4시간이 걸렸다.
이는 순전히 문맹 때문에 겪은 고생이다. 민호와 나는 일본말로 얘기해주면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일본 글자 앞에는 맥을 못 추었다. 그래도 눈치와 번역기를 통해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예약해두었던 ‘도쿄우에노 유스호스텔’은 생각보다 좋은 위치에 있었다.
호스텔 근처에 편의점, 옷가게, 카페, 공원, 밤이면 시끌벅적한 주점과 거리상가, 그리고 무엇보다 횡단보도나 건물에 턱이 없어서 휠체어를 타는 데 아주 용이했다. 근처 전철역만 4개가 있어 다른 배낭여행객들에게도 최적의 장소였으리라.
숙소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가 앞으로 5일 동안 묵을 객실 606호로 가서, 인사와 함께 객실을 둘러보았다. 내부는 2층 침대 2개와 기숙사 느낌의 방이었다. 짐을 풀고 나니 저녁 6시였다. 일본에 도착해서 음식 먹을 여유가 없었으나, 이제 일행들은 배가고파 소도 때려잡은 태세다. 이래서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 했던가.
우선 근처 라멘집(일본 식당에서는 대부분 턱이 있다. 하지만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접이식 경사로를 구비해 놓았단다)부터 찾았다. 메뉴판의 라멘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했다. 그렇게 대망의 첫 끼를 먹고(맛은 있지만 엄청 짜다), 다음의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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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예상치 못한 만남
우리들은 5일 동안 개인비용 50만원(항공기와 숙소 값 제외)으로 보내야 했기에, 오로지 대중교통과 도보를 이용했다. 도쿄(물론 대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했지만)의 거리를 휠체어로 타고 다니기 불편함이 없이 잘 정비되어 있기도 해서 가능했다.
또한 일본의 지하철 시스템이 체계화 돼 있어 장애인들도 편하게 다닐 수 있다. 한 예로 장애인이 전철을 이용한다고 하면 역 안내는 물론이고 역무원이 미리 와서 접이식 경사로를 깔아주며 내려서 역 출구까지 안내한다(장애인 승하차 시 전철을 운행하는 기관사가 직접 내려서 확인 후 출발한다, 덧붙이면 우리가 받은 안내는 외국인에 한해서인 듯하고 내국인들은 경사로만 도와주는 것 같다.).
나는 예전에 왕십리 지하철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 나가려다가 이탈되어 크게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지나가던 승객이 119에 신고해 응급실에서 상처를 꿰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 역무원들이 옆에 있어 안전하게 올라가는지 확인하고 인도해주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장애인들을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한 배려를 해 준 일본 역무원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도쿄를 여행하면서 지하철에 장애인 휠체어용 리프트를 본 적이 없다. 곳곳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로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노약자 혹은 장애인들은 안전하게 지하철 이용을 마칠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제일 먼저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 아키하바라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산업의 메카이다.
때마침 일요일은 차량통제를 하여, 아키하바라는 보행자 천국이었다. 엄청난 인파였지만, 지금 막 애니메이션에서 뛰쳐나온 것 같이 정교하게 코스프레한 아름다운 누님들과 에니메이션 캐릭터 피규어를 구경하느라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으로 향한 발걸음은 도쿄의 상징 ‘도쿄타워’이다.
올라가는 길이 남산타워보다 짧았지만 경사가 제법 있어, 수동휠체어라면 팔 근육을 미리 길러야 할 필요가 있을 정도다. 도쿄타워에서 특별전망대에 올라가면 운치 있게 도쿄시내 전경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로 표를 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보았다.
전망대는 총 3층으로 된 구조로 되어 있는데 3층 특별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해 40개 정도의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우리는 2층 전망대에서 만족해야 했지만 3층으로 올라가면 영화에서 보던 그 멋진 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는 일본 전통 사당 ‘타워 대신궁’이 있는데 그곳에서 연인, 가족, 소중한 사람들이 서로 소원 같은 것을 팻말에 써 매달아 놓는다고 한다.
팻말 하나 매말아 놓는데, 한화 7,000원 가량하니 웬만한 밥값이다.
평소라면 칙칙한 남자들끼리지만 여행지에서의 추억이라 생각하니, 내가 다섯 남자를 대표해 ‘이번 여행이 우리 모두의 인생에 귀하게 남을 이정표가 되어주길’이라는 소원으로 팻말을 달고 간절히 빌었다.
야경과 노을을 뒤로 하고 신주쿠로 이동했다.
신주쿠는 명동 같은 번화가로 생각하면 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거리가 굉장히 깨끗하고 보도도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어 휠체어로 다닐 때 불안한 느낌 없이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우리는 눈만 실컷 호강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사건이 터졌다.
당연히 내 뒤를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동료 세 명이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재빨리 전화를 걸어서 “나 지금 파란 건물 앞에 있어. 이쪽으로 와.”라고 전화를 끊고 나니, 주위는 온통 파란 건물뿐이었다.
일본어 까막눈이라 우리는 애꿎게 파란 건물만 그렇게 찾으면 40분을 간절히 찾았다. 결국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간판 ‘ABC MART'가 있는 파란 건물 앞에서 만나는 걸로 미아 찾기는 끝났다(여행 가기 전에 로밍 서비스는 필수!).
1시간가량 예상에도 없던 이벤트(?)로 심신이 지쳐, 우린 일정을 바꿔 ‘신오쿠보’역 근처에 있는 한인 타운으로 향했다. 근처에 도착하자 우리는 그간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일본에 와서 까막눈이 되어 버린 우리의 눈이 반짝 떠지게 되는 한글 간판들!
그 간판들 중에는 요새 한국에서 한창 인기몰이 중인 ‘백선생’의 활짝 웃는 얼굴까지 있었다(남자들이 남자사진을 보고 환호성을 질러본 건 처음이다).
우리들은 근처 주점에 들어갔다. 친절한 한국인 종업원이 우리의 메뉴선택에 훌륭한 조언자가 되어 주었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들 애국자가 된다더니 우리는 이틀 만에 그 경이로운 기적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훌륭한 저녁(치즈를 듬뿍 얹은 피자와 소주라는 다소 이상한 조합)을 먹고 숙소로 돌아갈려던 찰나에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여행지에서의 여담을 나누다보니 지하철 막차 시간을 놓치고만 것이다(새벽 1시경엔 모든 지하철이 끊기니 미리 도쿄 메트로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프리케이션으로 확인하자).
설상가상 전동휠체어 두 대의 배터리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혹시나 하고 챙겨온 충전기는 한 대뿐.
방금 전 친절한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도쿄에는 장애인 콜택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하는 마음에 가게 문을 닫은 후 동행해 주셨다. 민호, 영진이형, 창진이형(종업원), 기동성 있는 세 명이 일반 택시를 잡고 기사님께 여쭈어보았다.
그러자 휠체어가 탈 수 있는 택시를 불러주시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가격을 듣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도쿄에서 장애인 택시를 타려면 기사님께 부탁드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 가격은 한 대당 한화로 약 5만원이다.
우리는 재빨리 역내에 들어가서 충전기 전원을 꽂을 콘센트를 찾아 헤매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없습니다.” 간신히 평정을 되찾고 주위를 둘러보니 역내 안전 지킴이들이 쉬는 사무실 같은 곳이 있었다.
충전기는 한 대, 전동휠체어는 두 대.
충전시간은 각각 1시간. “스미마셍~”하고 전동휠체어 한 명씩 들어가서 충전을 시작했다. 그 시각 다른 4명의 동료들은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텅 빈 역내 통로에서 총 2시간을 졸면서 서서 있었다. 도쿄에서의 난데없는 노숙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다들 여행지에서의 고생은 인생의 달콤한 추억이 된다고 하는데, 이런 종류의 고생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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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토토로의 본가를 방문하다
하얗게 지새운 이틀째 밤이 지나고 도쿄에도 새 태양이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숙소 침대에 몸을 던지고 늘어지게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왜냐하면 우리는 청춘이니까!).
새벽 6시 지하철 첫 차를 타고 ‘미타카’역으로 출발했다. 일본이 낳은 최고의 애니메이션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전시하는 ‘지브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지브리 미술관은 티켓을 끊는 방법이 다소 특이하다. 현지에서는 편의점 ’LAWSON'에서 가능하다(단, 외국인등록증을 필히 소지해야 한다).
관광객 사이에서 미술관의 인기가 대단하기 때문에 사실상 구입이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행 전 일정을 계획할 때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이는 한 달 전에 가능한데, 오직 ‘KTB 대한 여행사’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9월 이전에 이미 예약을 했기 때문에 구입할 수 있었지만 다시 사이트에 가서 확인해보니 지난 8월 28일자로 여행사와 지브리 미술관 사이의 계약이 만료돼 이제는 인터넷 예매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추후 사항은 차차 공지한다고 하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팬들은 이 점을 꼼꼼히 체크해야 하겠다.
지브리 미술관은 ‘붉은 돼지’, ‘원령공주’,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배출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름을 따 만든 곳이다.
미술관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가는 방법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위해 지상버스가 운행 중에 있었지만 걸어가면서 보는 경치가 그만이라는 여행자들의 꿀 팁에 마음이 쏠려 다섯 남자는 도보를 이용하기로 했다(전동휠체어를 이용했을 시 약 20분 정도 소요).
풍경이 아름다웠는지 어쩐지 비몽사몽 휠체어를 운전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미술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야트막한 동산에 자리한 미술관에 들어가니 보송보송한 털에 귀여운 배불뚝이 ‘토토로’부터 작고 귀여운 매력의 ‘벼랑위의 포뇨’까지 친숙한 캐릭터들이 스테인드글라스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엘리베이터와 리프트(일반적인 다자인이 아닌 미술관의 분위기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 곳곳에 설치돼 있어, 휠체어나 유모차 관람객들의 편의를 챙긴 것이 인상에 남았다. 아쉽게도 내부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다양한 매력의 캐릭터들을 사진으로는 담아올 수 없었지만, 그냥 돌아갈 수 없다며 다들 기념품을 집어 계산대로 향했다.
밤샌 여파로 기면증 증세가 모두에게 일어나 밥이고 일정이고 다 취소했다. 그리고는 곧장 숙소로 돌아가 다음날 아침까지 숙면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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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바다 위의 인공 섬
우리는 바다 위의 인공 섬 '오다이바'를 가기 위해 서둘렀다.
오다이바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아사쿠사에서 수상택시를 타는 것과 ‘신바시’역에서 ‘유리카모메’라는 모노레일로 환승하여 ‘다이바’역에서 내리는 거다. 물론,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 환승역으로 이동했다. 신바시 역에서 내린 일행은 어느 역마다 존재하였던 엘리베이터를 찾아 다녔지만 없었고, 리프트도 없었다. 당황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역무원이 안내해준 장소는 에스컬레이터였다.
충격과 공포로 휩싸인 우리는 “휠체어는 이걸 못 탄다.”며 다른 방법을 찾으려하는 순간, 또 한 번 놀랄 장면이 펼쳐졌다. 역무원이 잠시만 기다리라며 열쇠를 에스컬레이터에 꽂자 서서히 멈추며 발판이 일자로 모여져 순식간에 리프트가 되었다(장애인들만 탈 탈수 있게 한 칸을 통제한다).
에스컬레이터 리프트를 처음 탔다. 한국에서 상상하는 리프트의 속도와는 달랐다. 초반과 끝부분만 느리고 중간부분은 에스컬레이터 속도와 거의 동일했다(나는 평소 스릴 있는 놀이기구를 좋아하지만 그땐 휠체어 팔걸이를 꽉 잡고 있었다).
변형된 에스컬레이터에서 무사히 내리고 모노레일을 타려 걸음을 재촉했다. 유리카모메는 전면 및 후면이 유리로 된 모노레일이다 보니 경치를 감상하기에 더 할 나위 없었다.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도착한 다이바역.
남쪽출구로 나오면 일본판 자유의 여신상과 레인보우 브릿지가 보인다. 미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비교할 정도가 아닌 미니어처 수준이라는 느낌이었다. 오전 11시의 레인보우 브릿지는 섬과 다른 섬을 이어주는 다리와 그 밑으로 햇빛이 반사되어 빛나는 바다, 마치 부산의 광안대교가 생각나는 풍경이다(사실 이곳은 야경으로 유명한 장소라 대낮에 보면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가능하다면 밤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도쿄에서 한국과 미국을 잠시나마 보고나니 전날의 굶주림이 몰려왔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아쿠아시티‘라는 상가건물에 들어가 햄버그정식과 해물카레라이스를 시켜 먹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었던 것인지 먹는 동안 한 마디의 말도,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식사를 마쳤다.
침묵의 식사가 끝나고 아쿠아시티를 나와 보니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건물 6층에서 7층 높이의 실물 크기의 건담 모형이었다.
이 모형은 TV애니메이션의 방송 30주년을 기념하기위해 제작된 높이 18m의 거대한 철골 구조와 강화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의 건담사랑은 대단해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프라모델, 등 다양한 상품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근처에는 카메라 셔터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인산인해를 비집고 들어갔고 그 느낌은 웅장함 자체였다(나는 건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모형이 주는 웅장함에 누구라도 압도당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관절마다 조명이 달려 있어서 시간마다 다른 색의 뿜어내 낮과는 또 다른 건담을 볼 수 있다. 건담 팬들은 이 점을 기억해두었다가 해가 지고 나서 관람하길 강추한다.
그 다음 향한 곳은 자동차 전시장이다.
오다이바가 유명한 관광코스로 꼽히는 이유가 있겠지만, ‘자동차 전시장의 천국‘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한다(물론 필자 생각이다).
닛산, 도요타, 혼다, 등 일본에서 알려진 차들을 거의 모두 볼 수 있다. 각 기업마다 부스(전시장)가 있는데 건물 하나여서 도요타 전시장만 들어가 보았다. 부스에 들어서자 휘황찬란한 차들의 향연이 있었다. 도요타가 제조한 스포츠카, F1을 달려야 할 듯한 레이싱카, SF영화에 나올 법한 미래형 디자인이 돋보이는 차, 옛 것의 미학을 살려 제작한 클래식 카까지 우리들의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들었다.
또한 눈 여겨 볼 것이 부스에 장애인 차량이다.
'장애인 차량이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나의 생각이 박살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는 무빙시트가 조수석에 있는 승용차, 수동휠체어가 그대로 운전석에 들어가는 승용차, 전동휠체어 2대가 탑승할 수 있는 차량 등이 있다. 장애인 차량도 한 가지 종류가 아닌 다양한 색과 개성으로 제작 되어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 보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필라이프 블로그의 복지 차량 편을 참조하길 바란다(
http://blog.naver.com/phillife8822?Redirect=Log&logNo=60196134644 ).
자동차 투어를 마친 후 주변 시설물을 둘러보니 TV드라마에서만 보았던 대 관람차(놀이공원에서 원형으로 돌아가는 박스)가 있었다.
이곳의 대 관람차는 높이 115m의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우리 일행은 “저걸 휠체어와 함께 탈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곧장 매표소 안내원에게 질문했고 예상과는 다른 대답을 들었다.
“탈 수 있습니다.”는 한마디에 거금 만원을 내고(휠체어는 무료라는 놀라운 사실), 난생 처음 대 관람차표를 끊었다.
3층 높이의 입구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 휠체어를 올리는 곤돌라는 따로 있어서 그 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곤돌라가 도착하고 “장애인 고객님이 탐승하고자 관람차를 잠시 멈추오니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대 관람차가 정말 멈추는 신기한 관경을 목격했다(사실 우리나라의 에버랜드나 그 밖의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일 것이다).
그 후 직원들이 경사로를 대주어, 대 관람차에 오를 수 있었다.
내부는 전동휠체어 1대와 사람 한 명이 타면 꽉 차는 공간이었으나, 탔다는 감격에 좁은 공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할 때 성공률을 올리려면 높은 곳에서 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 좋아하는 이성과 함께 타고 있다는 상상으로 탔다).
한 바퀴를 도는데 10분 정도가 걸리는데, 1분처럼 휙 지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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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누구에게나 동심은 살아있다.
도쿄 디즈니랜드
이번 여행의 클라이맥스인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디즈니랜드는 ‘디즈니씨’와 ‘디즈니랜드‘로 분류할 수 있는데, 디즈니랜드는 놀이기구 위주이고 디즈니씨는 볼거리로 이루어진 곳으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는 디즈니랜드로 가려 일찍 깨어나 우에노 역으로 향했다.
도쿄 디즈니랜드를 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도쿄’역에서 환승하여 ‘마이하마‘역에서 내려 ’디즈니리조트라인’(다즈니의 대표 캐릭터인 미키마우스 모양으로 제작 된 모노레일)로 가거나, ’마이하마‘역에서 랜드까지 걸어가는 방법(15~20분소요)이 있다. 우리의 주머니가 가벼워 도보로 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우리는 출발부터 어려움에 빠졌다. 무시무시한 출근시간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역에는 이미 넥타이 부대와 교복 입은 학생들로 포화상태였고, 우리가 비집고 갈 공간도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 찰나, 여자 역무원이 웃으며 다가와 “열차 3~4대 정도만 보내고 탈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고개만 계속 갸우뚱 거리며 “어떻게?”란 의심과 물음이 동시에 들었다. 열차 4대가 지나가고 다섯 번째 열차가 도착하는 순간 모두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교적 적은 사람들이 타고 있어 우리들도 오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우에노 역에서 그 전 역인 ’이나리초‘역과 '다와라마치’역까지 무전으로 연락해,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일본인의 호의에 고마움을 다시 느꼈다).
곧이어 도쿄 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 상황은 우에노에 비해 새발의 피 수준이었다. 도쿄 역은 우리 서울역과 같은 복잡한 장소인데, 출근시간까지 겹쳐서 오징어포처럼 될 듯했다. 이 지경에다 마치 어미오리를 따라가 듯 역무원을 뒤뚱뒤뚱 따라갔고 “지금 상황에서 지상으로는 못 올라간다.”며 안내해 준 곳이 지하의 직원통로였다(여기서도 장애인 전용 길이 있었다). 이렇게 남들이 쉽게 가보지 못한 길로 안내를 받아, 마이하마 역에서 내려 신속히 디즈니랜드로 갈 수 있었다.
열차 탑승시간만 계산해도 한 시간 남짓 걸려, 디즈니랜드에 왔다.
놀이공원을 구경하기에 맑은 날보다 약간 흐린 날이 좋은데, 딱 그런 날씨였다. 랜드도 입장권이 필요했다. 현지에서 직접 줄 서서 구매하거나, 한국의 여러 여행사나 사이트에서 예매가 가능하다(가격은 두 방법 모두 별 차이가 없다. 1인당 7만원). 우리는 자유이용권이 포함 된 입장권(원데이 패스포트라 함)을 미리 예매를 해놓는 덕에 줄을 안서고 바로 입장했다.
기구를 타고 싶었지만, 우리는 먼저 할 일이 있었다. 패스트패스(Fast Pass)를 끊는 거였다. 이는 도쿄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를 대기 없이 타도록 도와주는 표를 말하는 것인데, 입장권을 기계에 대면 시간이 찍혀 나온다. 그 시간에 맞추어 입장하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주의; 2시간에 한 번씩 끊을 수 있다).
마침 할로윈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호박과 귀신 복장의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끝이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파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다보니 놀이기구를 탈시간이 되어 스페이스 마운틴(놀이기구 이름임) 앞으로 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휠체어가 올라갈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입장불가라고 직원들이 제지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롤러코스터까지 타 본 경험이 있다며 직원에게 거듭 요청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민재와 같이 떠돌아 다녔다(전동휠체어로 오실 분들은 디즈니씨로 가시기를 권장한다). 도보가 가능한 3명은 즐겁게 소감을 늘어놓았고, 배가 고파서 쓰린 건지 부러워서 그런 건지 속이 좋지 않았다.
오후로 넘어가자 화려한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놀이 공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퍼레이드 아니었던가? 우리는 구경하기 좋은 자리를 찾으려 다녔다. 그러던 중 안내하는 분이 다가와 “저쪽에 장애인 자리가 있으니 따라 오십시오”라며 가장 잘 보이는 장애인 좌석으로 인도해 주었다(나는 우리나라에 돌아와 유명 놀이공원에 문의해본 결과 답은 “장애인 자리는 따로 준비 되어 있지 않습니다.”란 거였다).
앞자리에 앉은 우리들은 디즈니사의 유명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꿀통 들고 있는 푸우, 카우보이모자를 쓴 우디, 오리 궁뎅이를 흔들고 나타난 도날드 덕, 추사랑이 사랑하는 미키마우스 할아버지까지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였고 우리는 동화 속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동안 여운 속에서 빠져나오기 싫었다.
그때 머리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흐린 날이 구경하기 좋았다고 말했는가, 휠체어는 비와 상극이다. 우리는 고민 끝에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6시간동안 우리의 동화 같은 시간은 비와 함께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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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Day.
하늘 끝과 또 다른 시작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여행의 마지막 날인데 숙소에만 멍하니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마지막 공식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 동안 우리 집이 되어주었던 도쿄의 우에노 유스호스텔의 직원과 작별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했다(정이 든 사람과 장소를 떠나는 것은 언제나 아쉽고 또 아쉽다).
비를 헤치고 갈 우비를 머리와 휠체어에 장착하고 우에노 역으로 돌진했다. 마지막 일정은 스카이트리였다. 우리는 ‘아사쿠사’역에서 환승하여 ‘오사이게’역으로 향해야 했는데, 아사쿠사역에서 또 사건이 터졌다. 역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었다(정말 이러기도 쉽지 않다. 하루에 하나씩 일이 터 졌으니). 5일 동안 여러 일을 겪다 보니, 역사무실로 가는 버릇이 생겼다. 만화로 읽힌 일어실력과 바디랭귀지로 역무원께 전달하자, 깔끔히 해결되었다. 수리중인 엘리베이터를 가동시키고 휠체어를 위층으로 옮겨준 후 다시 수리하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다른 역으로 가라고 했을 텐데...
몸이 불편한 우리 청춘들은 이런 점 때문에 여행 중 가장 감동을 받았다. 좋은 감정을 갖고 도착한 스카이트리, 전파 탑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한다. 높이가 무려 634m로 2012년에 완공된 신상 관광명소이다.
입장권 예매는 인터넷과 현지구입 방법이 있는데, 이번만큼은 현지에서 구입했다(성인기준 제1전망대 350m는 2,060엔, 제2전망대 450m는 추가요금 1,030엔이 들어간다).
평일이라서 사람이 많지 않아 우리 차례가 빨리 왔다. 입장권을 사려는 순간 한국어로 “복지 카드 있으시면 50% 할인해 드립니다.”는 말이 쏙 들어왔다. 이곳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직원도 두고, 거기다 할인까지 해다니.
기대하며 1전망대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와’가 아닌, ‘아...’소리가 나왔 다. 창밖은 하얀 커튼을 내린 듯 구름만 보였고, 간간히 바람이 구름을 밀어 중간 중간 희미하게 건물만 보일 뿐이었다.
맑은 날이었으면 우리가 그동안 돌아다녔던 곳과 후지 산까지 볼 수 있는 장소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2전망대도 올라갔지만 상황은 같았다(3시간을 꼭대기에서 기다렸지만 비와 구름과 한숨만 머물렀다. 스카이트리는 날씨 좋은 날 무리를 해서라도 꼭 방문해, 저녁노을과 야경까지 보고 본전 뽑길 바란다).
사태가 이러자 밥이라도 원 없이 먹자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에서 꼭 먹어보고 싶은 3가지가 타코야끼, 우동과 라멘이다. 라멘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먹어보았지만 실패(너무 짜서)했다. 그 외에는 파는 곳을 몰라서 먹어보질 못했는데, 마침 스카이트리에서 푸드 코트를 발견했다.
그동안 아끼고 아껴서 마지막 날에는 실컷 먹을 수 있도록, 최후의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부드러운 문어 다리의 쫄깃함이 살아있는 타코야끼, 한국의 면과 다른 맛에 반할 수밖에 없는 우동, 밀가루 반죽에 삼겹살, 오징어, 새우, 양배추 등을 얹어먹는 오코노미야끼, 제일 무난하고 맛이 있는 돈까스 그리고 우유를 얼려 만든 눈꽃 빙수까지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거하게 먹었다. 그리고 하네다 공항으로 갔다.
돌아가는 항공시간이 다음날 오전 8시여서, 우리는 공항에서 노숙하기로 했다. 5일전의 하네다 공항은 여행의 설렘으로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출국의 아쉬움으로 이곳을 눈에 담고 싶었다. 활주로의 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기대와 귀국하는 사람들의 분주함, 도시 상점보다 싼 가격의 면세점을 기억에 새겨 넣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험난했고 마음 졸였던 우리의 첫 해외여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우리나라에 도착 후 김포 공항 직원 분께 “구루마 구다사이”라고 말했다는 후문).
P.S : “여행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기에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는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첫 해외여행에서 100% 스케줄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친구들과 도움을 주신 여러 분들 덕분이다.
감사드린다.